대한민국 태극기를 처음 만든 사람은?

태극기를 처음 만든 사람은 이응준(李應浚)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국기제정에 대한 논의가 처음 있었던 것은 1876년(고종 13) 1월이었습니다. 운양호사건을 계기로 한, 일 사이에 강화도조약 체결이 논의되는 동안, 일본 측은 “운양호에는 엄연히 일본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는데, 왜 포격했느냐?” 면서 트집을 잡았지만, 조선 측에서는 <국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조정에서 비로소 국기제정의 필요성이 활발히 논의되었고,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조선은 국기가 없었습니다. 1882년 5월 14일, 미국 전권특사 슈펠트(Schufeldt) 제독은 만약 조선이 청나라의 ‘황룡기’와 비슷한 깃발을 게양한다면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려는 자신의 정책에 위배되는 처사라고 생각해, 조선 대표인 신헌과 김홍집에게 ‘국기를 제정해 조인식에 사용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때 김홍집은 고종의 명을 받들어 역관 이응준(李應浚)에게 국기를 제정할 것을 명했고, 이응준은 5월 14일에서 22일 사이에 미국 함정인 스와타라(Swatara)호 안에서 국기를 만들었습니다. 이 ‘국기’는 1882년 5월 22일 제물포에서 열린 조인식에서 성조기와 나란히 게양됐습니다. (이는 1882년 9월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됐던 박영효가 만든 것보다 4개월 앞선 것입니다.)


1882년 9월 수신사 박영효 등 일행이 인천에서 일본 배(메이지마루)를 타고 도일할 때 박영효가 당장 게양해야 할 국기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메이지마루 배 안에서 그전에 이미 조정에서 대체적으로 정해진 국기 도안내용을 약간 고쳐(이미 1882년 5월 제작된 ‘이응준 태극기’ 중 4괘(卦)의 좌,우를 바꿔 재도안했습니다) 태극사괘의 도안이 그려진 기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조정에서 1883년(고종 20) 3월 6일(음력 1월 27일) 정식으로 조선 국기로 채택, 공포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만들어진 태극기는 그 후 널리 보급되었으며,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발발하며 전국적인 만세 시위에 태극기가 사용되자 태극기는 항일 운동의 상징으로 각인되었습니다. 1919년 4월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도 태극기를 사용하였으나 임정 수립 초기에는 태극기를 국기라 칭하지는 않고 단체의 깃발로 사용하다가 1942년부터 한국의 국기를 ‘태극기’라고 표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만들어진 태극기는 그 후 널리 보급되었으나 도형의 통일성이 없어서 사괘와 태극양의(太極兩儀)의 위치를 혼동하여 사용해오다가 1948년 7월 12일 대한민국 제헌국회에서 태극기가 국기로 공식 제정되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태극기는 흰 바탕에 태극과 4괘로 구성한다는 원칙만 있을 뿐 통일된 작도법이 없어 다양한 규격의 태극기가 통용되다가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 고시로서 현행과 같은 태극기 규격이 정해져 오늘에 이르렀습니다.